허준보다 뛰어났다고?
한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허준이다. 아니 가장 중요한 인물이 허준이다. 동의보감을 썼으며 한의학의 교과서다. 한의학을 크게 침과 뜸을 놓는 부분과 약을 쓰는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허준은 약을 잘 썼다. 동의보감에 약간 황당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침과 뜸에서 으뜸은 허준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으뜸으로 쳐주는 명의는 허임이다. 조선 제일침이라 불린다.
그가 더욱 놀라운건 천민 출신에서 어의까지 신분상승을 한 입지전적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 분야의 최고 경지까지 올라섰다. 허준과 허민은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런데 허준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고 허민은 그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인 사이에서 그렇지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허민은 허준 다음으로 대단한 인물이다.
침하면 허임을 치는 것은 허준이 인정했던 바다. 선조가 편두통이 심해 허준에게 침을 놔줄 것을 부탁하자 허준은 침은 허임이 제일이라며 그를 추천했다. 허준도 동의보감에 기록했듯이 침을 놓은 혈자리를 연구하였지만 침을 놓는 데 있어서는 허임을 넘을 수 없었으며 허임의 침놓는 특별한 비법이 있었고 뜸을 놓는 허임의 보사법도 있었다.
허임의 조상은 원래 양반이었다고 하나 단종 복위기도에 연루되어 집안이 몰락했다. 하양허씨 문경공파 가문이었는데 가문의 직계는 사형을 당하고 나머지는 노비가 되었다. 허임의 조상도 관노에 편입되었고 허임도 관노출신의 자식이기 때문에 천민 신분이었다.
그가 벼슬자리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광해군 덕인데 임진왜란 때 선조는 도망가고 광해군에게 분조를 맡기며 전장을 수습하게 했다. 그때 분조와 함게 전장에서 활약해 광해군의 신뢰를 얻게 된다. 신임을 받으니 남원 부사에 올랐는데 대신들은 그가 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어느 시대나 기득권층은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자신들의 부류에 편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천민의 신분으로 어떻게 침술을 배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부모의 병으로 인해 스스로 침술을 배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배경이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터득할 수는 없기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배워야 한다. 아무래도 관노였기 때문에 관청을 드나들던 다른 의원에게 배웠던 것이 아닐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의원은 그것을 가르쳐줬을 테고.
침과 뜸을 잘 놓는다고 소문이 나자 선조가 그를 입궐시켰는데 20년간 의원을 했다. 선조는 그를 최고로 표현했고 특히 광해군의 신임을 받았다. 선조는 그를 당대 최고의 의원이라고 표현했고, 광해군은 그를 하늘이 내려준 인재라고 한걸 보면 그의 능력을 잘 알 수 있다.
인조반정 후 광해군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렸다. 광해군에 대한 의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광해군에 의해 중용된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관직을 버린 후에는 집필 활동에 전념했는데 '침구경험방'이라는 책을 썼다. 이 서적은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한의학이 원래 중국에서 건너온 건데 이 책이 중국까지 역으로 수출되고 청나라에서는 이 책을 표절한 이가 있었다고 한다. 표절한 책의 이름은 침구집성. 중국의 짝퉁 기질은 그때도 있었나 보다.
이 침구경험방은 침구학 부분에서 동의보감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준다. 그의 뛰어난 침술은 왕에게도 인정을 받았으나 그의 출신 때문에 또는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는지 그에 대한 것은 잘 보존되지 못했다. 그의 보사법 침술이 전해지지 못한 것만 봐도 명성에 비해 그의 침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아니면 제대로 전수가 못되었던가. 실제 제자도 있었다고 하니 그의 재주를 전수받을만한 인물이 없었나 보다. 아무래도 약재와 다르게 침술은 기술적인 부분이라 책으로 써도 제대로 전수하려면 실제로 연습을 해야만 하는 부분이라 정말 재능 있는 제자를 만나기 전에는 전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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