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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두문불출 두문동 72인 이야기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집안에만 있고 바깥 출입을 안 하는 것을 두문불출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자성어는 중국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더 유명하게 되었다. 두문불출의 원래 의미는 집 바깥을 안 나가는 것이 아니고 두문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두문동은 실제 동네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그러나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기슭이라는 설도 있다. 이곳에는 72현이라고 불리는 72명의 사람들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역사라 보기는 힘들고 야사에 가깝다. 



<두문불출 72인 이야기>


고려가 태조 이성계에 의해 망하자 고려 유생들 중 72명이 두문동에 칩거하여 벼슬도 하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 이성계는 무신 출신으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선비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고려를 섬기는 선비들을 회유하기 위해 과거를 실시했으니 개경의 선비들이 아무도 응시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왕씨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웠지만 아직 정권의 기초가 탄탄하지 못했다. 이성계는 마음으로는 여전히 고려를 섬기고 있는 선비들을 회유하기 위해 경덕궁에서 친히 과거를 열었다. 하지만 개경의 젊은 선비들은 아무도 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를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관을 벗어던지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선비들이 은신해서 산 곳을 두문동이라고 했는데 조선에서는 이 선비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떤 회유책에도 나오지 않자 마을에 불을 질렀다. 불이라도 내면 나올 줄 알았던 거다. 이렇게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두문불출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충신 72인은 나오지 낳고 불 속에서 그대로 목숨을 버렸다. 1740년 영조가 개성에 갔다가 이 유래를 전해 듣고는 비석을 세운다. 이로 인해 두문동 72인의 이야기가 유명해졌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부풀려진 야사다. 조선초에 고려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잠적한 선비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72인의 명확한 기록은 없다. 72현 중 임선미, 조의생은 은거했다는 것이 확실한 사람이고 원래 50여 가(家)에서 과거를 거부해 이를 기린것이다.



고려의 충신인데 이를 기린 이유는 분명하다. 충신의 본보기로 삼아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 처음에는 72인이 아니었지만 입에서 입을 거치며 72인이 되었다. 정확한 명단이 없으니 저마다 양반가문에서 우리가문이 72현 가문이오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겨버렸다. 마치 아무런 근거없이 우리가 독립운동 가문이라 떠벌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뒤에 마온 72인의 명단은 확실하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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