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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트와일라잇 존

얀센파 성 메다르의 기적, 경련자들을 만들어 내다

1727년 얀센주의(초대 그리스도교의 엄겨간 윤리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종교운동 종파)의 성자라고 불리던 프랑수아 드 파리가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성 메다르(Saint-Médard)에는 안장되었다. 그가 묻힌 뒤 성 메다르에는 그를 추앙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었다. 


성자로 추앙받던 프랑수아 드 파리 신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던 중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치유되는 현상들이 생긴 것이다. 이 일은 금방 소문이 나게 되었고 점점 성 메다르를 찾는 순례객들이 늘어났다.


성 메다르 성당


의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광적인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 무덤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 병의 치유를 경험하거나 종교적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종교적 경련(일종의 종교적 집단 히스테리, 프랑스 얀센파의 광신자를 의미)로 인해 광신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 메다르에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이를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의 개입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원하는 신학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위해 성메다르의 기적을 정당화 하고 이 광란의 현상을 점점 확대 재생산하여 국가적 관심사로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 한다. 이렇게 집단이 모이면 불안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다. 성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아예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 중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잡아들였다. 그리고 더이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프랑수아 드 파리의 전기를 붙태우는고 그를 추종하는 것 자체를 탄압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얀센파의 경련자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적인 현상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성 메다르 자체를 폐쇄한하는 강수를 둔다. 성 메다르에 모이지 못하고 흩어진 경련자들은 인근의 교회에 소집단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런 안좋은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극단적인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종말론이 핵심가치가 되어 이로 인해 결집하게 되고 성 메다르를 대신할 다른 소규모의 성지를 만들어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자 또 다시 집단 경련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 경련현상은 육체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기 떄문에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들은 이를 해소하기 이해 몸을 때리거나 육체적 고통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독으로 독을 치유한달까... 이런 방벙을 사용해 아예 고통을 느끼지 못하거나 황홀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해도 작은 부상조차 입지 않는 기적이 생겼다. 일종의 최면 현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경련 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았다. 얀센파 자체는 남녀나 지위의 차별 없이 교회의 엘리트주의를 배척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이는 광적인 경련 현상은 일반적인 종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니 취지가 좋다고 해도 외부의 박해와 탄압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압박과 일반인들의 외면으로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성 메다르의 기적으로 치유된 사람들


하지만 이런일들이 일어날 경우 거의 예외없이 어딘가에는 사상과 전통을 계승하는 지하조직이 존재하게 된다. 어쩌면 얀센파도 그렇게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그들의 부흥과 혁명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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