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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정희량의 신선로

한국음식중에 신선로라고 있다. 전통 음식이다. 신선로(神仙爐)는 여러가지 어육과 채소를 담은 그릇에 육수를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어육과 채소는 그냥 한 그릇에 뭉퉁그려 담는 것이 아니고 색색별로 그릇을 빙 둘러 담는다. 모양자체가 고급스럽다. 옛날부터 잔칫날 만들어먹는 귀한 음식 중 하나다. 지금도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먹는 것은 아니다. 보통 정부에서 외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할 때 자주 등장하고는 한다.



보통의 음식들이 유래를 알기 힘든데 반해 이 신선로는 그 유래가 자세히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고서인 [조선요리학]에 나와있다. 만든 사람도 명확히 알려져 있는데 신선로를 만든 사람은 연산군 시대의 '정희량'이라는 사람이다. 정희량은 무오사화를 겪고나서 속세를 떠났다. 선인생활을 하면서 화로를 만들어 채소를 끓여먹은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의 기품이 신선같았고 그가 만들었기때문에 신선로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희량은 1469년에 태어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492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성종이 죽은 후 해주로 유배되었다. 이후 1495년 증광시 병과 8위로 급제하고 이듬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승문원의 권지부정자에 임용되는 잘나가는 문인이었다. 그러나 무오사화 때 사초문제로 탄핵을 받아 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1500년 김해로 이배되었다가 1501년 어느날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종적을 감춘 후 식구들이 찾아나섰는데 물가에 짚신 두 벌과 상관이 있었다. 강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후의 일이 야사인데 정희량은 화를 피해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퇴계 이황이 절에서 주역을 읽는데 한 늙은 중이 곁에서 구두의 잘못을 고쳐주었다. 이황은 그를 정희량으로 지작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홀연히 떠났다. 속세에 어지간히 나오기 싫었나보다.


평소 그의 기품은 신선과 같았고 사람들도 그가 신선이 되어 떠났다고 생각해 그가 먹던 음식에 신선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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