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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단종의 한을 풀어 준 영월부사 박충원

1507년 태어난 조선중기의 문신 박충원. 그는 1541년 영월부사의 자리를 얻어 가게 되었다. 영월은 수양대군이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아 유배를 보낸 곳으로 단종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기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나오는 곳도 있으나 다른 기록에는 사약을 받아 죽었다고 나와있고 자객에 의해 죽었다는 설도 있어 여러 정황상 타살이 확실해보인다. 고로 단종은 한을 품고 죽었을 것이다.


<단종의 묘 정릉>


그래서 그런지 당시 영월은 3명의 군수가 연이어 비명횡사해 나갔다. 이로 인해 민심히 흉흉했는데 단종의 원이 서려서 그렇다는 얘기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단종이 사망하자 시신을 그대로 방치했는데 고을 사람들도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지 못했다. 단종의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버려져 떠다니다 호장 엄흥도가 을지산에 암장했다.


<드라마 속 단종의 죽음>


암장을 한데다 봉분도 작고 사람들이 쉬쉬해서 단종의 묘가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월사람들은 무덤을 군왕의 묘라 부르며 어린아이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



군수가 연이어 죽고 민심이 흉흉해 부임을 꺼리던 이곳에 영월부사로 내려간 박충원은 의외로 초연하게 행동했다. 아무래도 담이 센 인물이었던 듯. 그는 사람들이 입에 담기를 꺼려해 알려지지 않았던 단종의 묘를 찾아서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묘를 지키게 하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연이어 죽은 다른 군수들과 달리 박충원은 5년 동안 재직하면서 아무탈이 없었다.


<박충원의 충신됨을 알리기 위해 세운 낙촌비각>


어쩌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단종이 박충원의 행동에 감명받아 지켜줬던걸까? 이 야사를 보면 장화와 홍련이 생각나기도 한다. 사또가 부임해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 장화와 홍련이 찾아갔지만 담이 약한 사또들은 심장마비로 죽어나갔다는 이야기. 혹시 단종도 억울함을 알리려 부임한 군수들을 찾아갔는데 담이 약한 군수들이 변을 당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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