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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가 가진 비밀스러운 이야기 9가지

누구도 부인 못할 팝의 황제였던 마이클 잭슨.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온갖 기록과 독특하고 비밀스러운 사생활 등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독특한 삶을 한번 보자.



  그는 자신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누설했다


마이클 잭슨의 기괴한 삶들은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는데 잘 알려진 어린이를 좋아하고 어린이 같은 마음을 가진 것과 달리 무대 뒤에서 효율적이고 계산적인 언론플레이도 했었다. 예들 들면 그가 음악활동을 오랜기간 쉬고 있을때도 세계 언론의 주목을 계속 받기 위해 몇가지 사실들을 일부러 누설하고는 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그가 고압산소실에서 잔다는 것, 코끼리맨으로 알려진 존 메릭의 해골을 구입하려 입찰했다는 것, 애완원숭이 버블스와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것 등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이 단순히 언론의 주목뿐 아니라 자신을 귀찮게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만 두었다. 이런 이야기들에 영국 언론은 마이클 잭슨을 미친사람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음성으로 작곡을 했다


유명한 음악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는 자신의 수많은 히트곡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작곡하는 방법을 이해했지만 악기를 연주하거나 악보를 읽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클 잭슨은 세션 음악가들에게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 들려줬다.



이런 작곡 방식때문에 그는 항상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역마이 떠오르면 녹음을 했다. 그런 다음 아카펠라 버전의 노래를 만들었는데 자신의 목소리로 다양한 악기의 사운드를 내는데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한 음악가는 그가 목소리로 전체 섹션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진짜 황제가 되었다


팝의 황제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는 마이클 잭슨은 실제로 1992년 실제로 왕이 되었다. 90년대 초 그가 아프리가 여행을 했을 때 아이보리 코스트에 산위라고 불리는 작은 왕국에 들렀다. 산위 부족인들은 그에게 매혹되었다. 부족장은 실제 마이클잭슨이 산위왕의 혈통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의식을 통해 마이클잭슨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왕좌에 앉게 했다. 그는 떠나야 하기에 뒤에 그의 왕으로서 직함과 의무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지만 그는 그 시점부터 진정한 왕족으로 간주되었다. 적어도 산위에서는. 심지어 그곳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 왕의 장례식을 치렀고 2일간의 애도기간을 가졌다.



  그는 죽었어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끝난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이 부분에 있어서 예외다. 그는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고인이 된 명사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수입은 10억달러로 사망한지 7년이 넘었다.



이는 마이클 잭슨이 가진 방대한 히트곡 목록의 판매 및 라이센스 덕분인데 이는 자신의 노래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라이센스를 구입했다. 예를 들면 비틀즈의 목록에 대한 권리를 1985년 완전히 사들였다.



  그의 죽음은 구글을 파괴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그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처럼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전 세계적인 큰 이슈였다. 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사람들이 몰린 것은 바로 세계 1위이 검색엔진 구글이었다.



소식이 전해진 순간 몇분만에 구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구글의 통계에 의하면 그 사건은 견고했던 구글 웹사이트를 트래픽으로 무릎꿇게 만들었다. 다운이 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검색양은 100개중 50개가 마이클잭슨 관련 검색일 정도였다. 구글은 늦은밤 소식이 알려져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추측했다. 사람들이 직장에 있는 시간이었다면 더 많은 트래픽이 발생했을 것이다. 저녁에 알려져 사람들은 인터넷 말고도 TV로 소식을 많이 받아봤다.



  문워크의 창안자는 마이클잭슨이 아니다


빌리진이 발표되면서 마이클 잭슨이 춘 춤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분명 앞으로 걷는 동작인데 뒤로 미끄러지듯이 가는 그의 춤은 큰 화재가 되었고 마치 중력이 약한 달을 걷는듯 하다는 의미로 문워크라 이름지어졌다. 이 춤은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빌리진 문워크 첫 데뷔 무대


그러마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이 창안하지는 않았다. 이 기원은 1907년생인 무용수 캡 캘러웨이로 거슬러 올라가며 팬터마임 배우 마림 마르소가 완성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미 1930년 소울 트레인이라는 TV쇼에서 흑인댄서 제프리 다니엘이 보여줬고 이를 마이클잭슨이 직접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마이클잭슨은 이를 더 향상시켰고 훨씬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모습을 빌리진에서 선보이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



  장갑은 피부 상태를 숨기기위한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것은 손에 낀 흰 장갑이다. 복장 자체가 독특하기는 했지만 그는 늘 장갑을 끼고 있었다. 수년 동안 다양한 스타일의 장갑을 자랑한 이 독특한 패션은 사실 멋을 위하는 것보다 마이클 잭슨의 병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건 피부 백반증인데 피부색이 변하는 보기에 안좋은 병이었다. 이로 인해 피부에 얼룩이 생겨 이를 숨기기 위해 장갑을 착용했다고 한다. 피부색이 검은데 흰색으로 탁색이 되는 이 병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백인이 되려한다고 모함했지만 아마 진한 화장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게임 소닉3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를 했다


1994 년에 발표 된 세가의 게임 소닉3에는 마이클 잭슨이 작곡한 사운드 트랙이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이클 잭슨은 동심의 세계에 살았던 사람으로 게임 사운드 트랙에도 관심이 많았던 듯 싶다. 세가에서는 그와 함께 게임의 사운드 트랙을 작곡했는데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마이클 잭슨의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서 세가는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마이클 잭슨이 이 게임이나 음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다. 마이클 잭슨이 다수의 사운드 트랙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 중 카니발 나이트 존, 하이드로시티 존, 그리고 아이스 캡 존 등을 작곡했을 거라 생각되어지고 있다.

 


  그는 심슨가족의 바트 심슨을 위한 앨범을 내기로 약속했다


마이클 잭슨은 심슨가족의 열혈 팬이었으며 3번째 에피소드 'Stark Raving Dad'에 그의 목소리를 더빙했다. 마이클잭슨이 목소리를 입힌 캐릭터는 자신이 마이클 잭슨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정신병자였다. 마이클 잭슨은 바트 심슨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했으며 이를 위한 싱글 앨범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바트맨


그는 바트맨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음반사와 계약때문에 작곡자로 밝힐 수 없었다. 이때문에 작곡자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연에서는 이 노래를 들려 주었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는 1위를 하지 못했지만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차트 순위를 거머쥐었다. 이유는 미국에서는 실제로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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